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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슬픔의 봄, 다시 찾은 벽화의 마을
백진희 청운고2  |  kbzzi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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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4  16: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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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같은 좋은 학생들이 나중에 큰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같은 사람들 불쌍히만 여겨주십쇼."

작년 4월, 예쁜 벽화로 가득한 신화마을에서 한 할아버지께 들었던 말이 1년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꽃이 만개한 이 봄, 그 목소리는 나를 다시 한 번 그 아름답고 소박한 마을로 이끌었다.

 

  현대청운고등학교에서 4월 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틀에 걸쳐 실시되는 '울산 사랑의 날' 행사. 작년에 신화마을을 처음 찾게 된 것은 그 첫째 날이었다. 3월 중순 즈음, 마음이 맞는 다섯 명 내지 여섯 명으로 조를 구성하여 울산 지역에서 탐방하고 싶은 곳을 골라 한 달 동안 계획을 세우고, 이 날 탐방 활동을 진행했던 것이다. 우리 조는 예쁜 벽화가 가득하고,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신화마을에 매력을 느꼈고, 결국 신화마을을 탐방하기로 합의를 봤다. 조금 갑작스럽지만, 그 봄날의 아련한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본다.


  신화마을은 1960년대에 울산공단이 형성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단 이주민촌이다. 신화(新和)라는 마을의 이름은 “새롭게 화합하여 잘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신화 마을은 울산의 벽화마을과 예술마을로 불리는데, 마을 입구에는 이곳을 지키는 상징물로서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으며, 골목마다 다양한 테마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마을 안에 있는 문화관에서 가져갈 수 있는 안내 책자에도 적혀있고, 시간을 조금만 할애해 인터넷을 찾아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 입구가 상당히 더러웠고 약간의 악취가 났다. 마을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우리 조원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마침 근처에 꽤 큰 종이 봉지가 버려져 있길래, 쓰레기를 몇 개 주웠다. 많이 줍지는 못했지만, 명색이 문화마을이라는 곳에서 쓰레기로 가득찬 봉지를 보며 우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담배꽁초가 입구에만 눈에 띄는 것만 수백 개는 버려져 있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아마도 마을 주민들이 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신화마을은 정말 말 그대로 ‘마을’ 이었다. 게임 속 배경이 되는 시골마을 같은, 진짜 그런 ‘마을’. 마치 1970,80년대의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았다. 공중전화. 방범소. 오래된 안내판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마을 입구로 이어진 길의 끝에서, 우리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사진은 전부 직접 찍은 것들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도 교사와 함께 탐방 활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입구에서 선생님을 기다려야했다. 입구 바로 근처에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니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은 구식 공중전화를 보고 신기해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사진의 방범초소 옆 안내도 앞에 모여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왜 그런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 와보는 마을을 더 둘러보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다 위의 사진의 푸른 지붕의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 옆을 돌아보니, 비석이 하나 있었다. 있는 비석에 적힌 글을 몇 분 정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석의 내용 때문이었을까, 마음 한 켠이 아렸다. 그러다 방범초소 쪽에서 웬 고함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가보았다.


  한 허름한 차림새를 한 할아버지께서 친구들에게 열변을 토하고 계셨다. 얼굴엔 검버섯이 돋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신 그 분은 불편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고 계셨다. 대부분이 나라 욕이었다. 자식들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자식이 여럿이라 기초생활수급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이 분. 그리고 이 분처럼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이 마을을 전혀 관리하지 않는 정부. 그리고 그 분 근처에 있는 두 펭귄 조형물 중 ‘펭귄’의 의미. 그리고 마을을 배회하는 길고양이들.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이 가난한 마을의 민낯을 그대로 말씀해주셨다. 해진 셔츠 위에 거멓게 물든 하늘빛 점퍼를 걸치고 계셨던 그 분은 우리에게 말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같은 ‘불쌍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그 분은 어떻게 그런 힘든 인생을 칠십 년이나 견뎌내셨는지. 이 마을이 그림으로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이 마을은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착잡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 할아버지도 그 분이 입고 계셨던 하늘빛 점퍼처럼, 이제부터라도 남은 인생을 푸르게 사실 수 있었으면.
  우리는 예쁜 벽화와 조형물들을 보며 감탄하고, 즐기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도둑고양이들은 계속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우리는 갈라져서 마을을 둘러보기도 하고, 같이 둘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들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예쁜 집들은 예뻤지만, 벽화가 그려져 있지 않은 가구들은 소위 말하는 '달동네'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는 보고 싶은 '예쁜 것'들만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선 근처에 앉아계셨는데, 조금 둘러보다 그 자리에 다시 와보니 어디로 가셨는지, 그 후로는 다시 뵐 수 없었다.
목이 말라, 마치 구멍가게같은 슈퍼에 들어서니 주인 할머니가 가게 안쪽에서 누워계셨다. 주인 할머니도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셨다. 게다가 외부 사람을 오랜만에 보는 탓이었을까. 할머니는 나를 계속 쳐다보시며 유난히 큰 미소를 지으셨다. 그 인자한 표정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학교 자판기에서 칠백 원 하는 음료수 한 캔을 천 원을 주고 사먹었다.

 

  근처에는 ‘신화예술인촌’이라고 소박한 간판이 걸려있는 아기자기한 건물이 있었다. 아기자기한 건물 안에는 신화마을 안내 책자가 많이 있었고, 10년 뒤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을 수 있는 우체통도 있었다. 우리 조 중에선 나만 10년 후에 그 편지를 받겠지만. 지금은 그 편지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마을에서 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화마을은 내 머릿속 아련한 기억으로 그 자리를 옮겨갔다.

 

 

 

  문득 다시 찾은 신화마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변함 없이 그대로일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달리, 상당히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가 눈에 띄게 줄어있었고, 도둑 고양이들이 지난번처럼 그렇게 많이 보이지도 않았다.
  푸른 햇살이 비치는 날이었지만, 푸른 점퍼의 할아버지는 찾아뵐 수 없었다. 구멍가게 주인집 할머니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셨다. 신화예술인촌에는 사람의 흔적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 건물 외벽에 걸려 있는 우체통에도 꽤 많은 편지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 몇가지를 접할 수 있었다.

 

 

  지난 11월 창설된 봉사활동 단체 행복 담기 봉사회(이하 행담회)가 1월 27일과 2월 24일, 신화마을에 방문하여 집수리봉사 및 폐기물, 청소등의 봉사활동을 실시했다고 한다. 행담회 회장 이소영은 “1월부터 매월 토요일 넷째 주 토요일, 신화 마을을 찾아 가서 열악한 환경 속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1년동안 주거환경 개선작업을 진행한다. 또한 모두가 행복한 남구를 위해 더욱더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웃었다고 한다. 푸른 점퍼를 입은 그 할아버지의 마음이 닿은 것일까. 코가 시큰거렸다.                       [출처] : 울산매일 TV, "행담회, 신화마을 저소득층 집수리 봉사"

 

  또 하나 마을에 변화가 생긴 점은 올해 3월부터 신화예술인촌에서 마을 홍보 등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체적으로 매주 토요일 '미술체험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것과 비슷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는 있었지만, (위 신화예술인촌 사진 참조) 참여 대상이 마을의 방문객으로 한정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가 어렵고, 또 참여하기가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고 한다. 미술체험교실은 이를 개선한 것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매 달 첫째 주에 실시되는 '토요 공방'과, 둘째 및 셋째 주 토요일에 실시되는 원래 진행되던 프로그램이 한층 개선된 '손수건 염색 체험하기', 그리고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실시되는 '어린이미술체험교실' 등이 신설되어, 어두웠던 마을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3월 3일에는 신화마을 양희성 마을미술가가 방문객들 및 울산시 블로그 기자단과 함께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마을의 유래와 벽화에 대해 깊은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낮에도 습습한 어두운 기운이 감돌던 마을에 이렇게 봄의 생기가 돋게 되다니, 놀랍고도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신화마을, 다시 찾은 그 곳은 지난번의 그 곳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벽화가 그 날 따라 더 눈부셔 보였다. 찬란한 슬픔의 봄, 아직 벽화 뒤에서 가난에 젖은 눈물을 흘리시는 분께 마음으로나마 축복의 기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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